단(丹)나라 제 10대 문제 18년 7월 문제 실록
남해의 칠지도 목사 이웅이 황제에게 계하니 “일주일 전, 폭풍이 잦아든 다음에 백성의 피해를 알고자도를 순시할 때, 커다란 배한척이 깨져 해안에 닿아서 군사를 시켜 보게 하였더니, 뒤집혀 사라아난 자가 육십이오, 죽은 자가 산자의 수와 거의 같았습니다. 다행히 그들 중에 우리의 글을 아는 자가 있어 그들이 저 적해를 넘어 있는 나라의 백성이라 하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파란 눈에 사람이며, 그리고 하나는 검은 피부에 금빛눈을 가지니 마치 오귀(烏鬼: 까마귀 귀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이 풍랑을 만나 배가 깨져 우리 단으로 흘러들어왔으니, 다시금 그들의 나라로 배를 고쳐 돌아가고자 한다 말하고 있사옵니다. 이들을 어찌하오이까?”
칠지목사 이웅의 장계에 조정에서는 그들을 황도로 올려 보내라고 명하다.
문제 18년 8월 7일
이웅의 치계하여 60여명이 황궁에 왔다.
이 소식을 들은 황태자는 호기심이 동해 직접 문정하고 싶다 황제에게 고하니, 황제 웃으면서 그를 허락하다. 황태자가 직접 지필묵을 가져가 그들의 우두머리라 말하는 자와 필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황태자는 그 일을 황제께 가로다. “그들은 적해를 넘어있는 미오국이라는 곳의 선원들로 적해 넘어 우리 단나라가 덕이 높고, 풍요로와 교역을 하고 싶어 커다란 바다를 넘어 왔다 하옵니다. 우리와 생김이 다르나 우리만큼 덕이 모자라지 않고, 신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배를 고쳐주고 무사히 그들의 나라로 보내주는 것이 우리의 덕이 장차 그들의 나라에서 칭송받고, 우호를 다질 수 있다 생각하옵니다.”
황제 역시나 황태자의 말이 옳다하여, 각 신료들에게 물으니, 모두들 황태자의 말이 옳아 그의 말을 따르자라고 하였다.
그 말을 하고 황제는 황태자로 하여금 그들을 다시금 남해로 보내고 직접 전송을 하라 하였다. 그들을 전송하기 위한 준비를 하던 황태자의 눈에 한명의 검은 피부를 가진 오귀와 같은 사람을 보았다. 그만이 발에 쇠사슬을 하고 있어 황태자는 의야희 생각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 저 남자만이 쇠사슬을 하고 있는가, 그는 죄인인가?” 그 말에 그들의 우두머리가 말을 하니, “아니옵니다. 이 자는 노비이옵니다”
황태자 이에 놀라 말하였다. “우리나라의 도는 노비라 하여도, 죄인이 아니면 사슬을 채우지 않는다. 모습이 너무 처량하니 이자를 풀어 줄 수 없겠는가?”
황태자의 덕에 감명을 받은 그들의 우두머리는 오귀와 같은 피부를 가진 남자의 사슬을 풀어주고 그의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황태자의 덕을 칭송하다.
황제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황태자의 덕을 칭찬한 후에 그 남자의 피부빛이 오귀와 같다하여 오씨의 성을 주고, 호패를 내리고 작은 전답을 주라고 명하다.
단나라 무제 9년 12월
북쪽의 오랑캐들의 기마가 너무나 빨라 황제의 군대가 포위되어 천수성에서 발이 묶이다. 그들의 진법은 신묘하였고, 그들의 군대는 너무나 강경하여, 황제의 근위군 조차 어찌할 수 없이 죽음을 기다렸다. 십만의 대군은 황제에게 너무 멀리 있었고, 일만의 적은 너무나 황제의 가까이에 있었다. 황제 눈물을 흘리며, 수치를 겪지 않기 위해 자결을 결심하려는 때, 멀리서 빛나는 거대한 장도를 가진 인영이 붉은 기마를 몰고 적의 기마를 도륙내며, 다가와 오랑캐의 우두머리의 목을 잘라내니, 적의 수많은 기마가 놀라 천수성에서 도망을 갔다.
황제 그 모습에 너무나 놀라, “그대가 종묘사직과 짐의 목숨을 구했구나. 도대체 그대는 누구인가?” 라 말하며 성문 열고 그를 맞이하였다. 그자가 투구를 벗자, 놀랍게도 그는 마치 오귀와 같은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저의 이름은 오씨의 성을 가졌고, 이름은 설연이라 하옵니다. 황제께서 젊은 날, 저의 아버지를 노비에서 풀어주시고 이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가 있기에 칼을 들고 일어나 그 은혜를 갚았나이다.”
여인의 말에 황제는 감복하여 그 여인에게 정2품의 태허장군의 직위를 내린다. 전례가 없는 일이나 홀몸으로 황제를 구한 무력과 그 충심에 누구도 반론하지 못하다.
단나라 무제 11년 4월
태허장군 오설연이 북쪽 오랑캐들과 손을 잡은 역적 박명의 목을 베어 황제에게 바치다. 관군을 지휘한 제 3황자 욱이 그 무위를 황제께 고하고, 그녀의 공을 칭송하니 황제는 더 이상 오를 품계가 없어 공을 다 보상하지 못하니 황금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그녀에게 내리라고 말한다.
무제 11년 9월
제 3황자 욱이 태허장군 오설연을 자신의 비로 삼길 원하여 이를 황제께 고하다. 모든 신하들은 수만의 군사를 지휘하며, 전장에 나가며 쌓은 감정을 애정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이를 허락하지 말기를 말하다. 황제는
“신분도 공도 모든 것이 높은 장군이 무엇이 부족하다하는가? 언제나 오랑캐를 막은 3황자를 가까이 할 여인이 없지 않는가?” 라고 웃으며 그녀를 비로 삼는 것을 허락하다.
무제 12년 10월 6일
북쪽의 오랑캐 오만 대군을 끌고 내려오다. 이에 제 3황자가 이만의 어림군을 끌고 자신의 비인 오씨와 함께 그를 먼저 막으러 가겠다고 고하다. 이에 황제는 그를 허락하다.
무제 12년 10월 30일
북령에서 제 3황자가 진을 치고 이만의 어림군으로 오랑캐의 오만 대군과 커다란 전투를 벌이다. 이 싸움은 칠일 밤낮으로 이루어졌으며, 제 3황자의 비인 오설연이 활약하여, 오랑캐의 두목을 베고 오만의 대군을 전멸시키다. 그러나 어림군도 팔할이 죽었다고 하였다. 제 2황자가 각지의 군사를 모아 북령으로 갔을 때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고, 그들은 오랑캐의 군대를 막았지만 3황자는 큰 부상을 입고 있었다.라는 장계를 황제에게 올리다. 황제는 장계를 읽고서는 3황자각 걱정되어 눈물을 흘리고 말이 없었다
무제 12년 11월 6일
3황자가 죽다.
황제는 그 소식을 듣고, “가장 종묘사직을 위해서 노력한 욱이 이렇게 죽다니...” 하며 슬퍼하였다. 황제는 이어 “3황자에게 북령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 북령에 이를 칭송하는 비를 세워라. 그리고 3황자의 비 오설연을 어서 황궁으로 데려와라. 며느리라도 보고 싶구나.” 라고 명하다.
무제 12년 11월 13일
제 3왕자 북령왕비는 남은 어림군을 데리고 황도로 왔으나, 황제를 만날 수 없다고 한다. “나라의 장군으로써 황자를 보필할 수 없었고, 부인으로써 지아비를 지킬 수 없었으니 무슨 얼굴로 황제를 뵙겠습니까? 과거 황제께서 내리신 금갑을 반납하고 전 관직과 신분 모두를 버리겠나이다.” 금갑을 황궁의 앞에 놔두고 북령왕비가 그렇게 고한 후 황궁을 벗어나니 모든 군사와 백성이 울음을 지었다. 황제마저, 그 말에 그녀를 막을 수 없이 그저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다.
===
단나라의 정사에서 흑인에 대한 기록은 이게 가장 유명하다. 북령왕비 태허장군 오씨는 각종 야사의 기록에서도 많이 보이지만, 그 못지않게 짧지만 매우 굵은 기록이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야사에서 그녀에 대한 각종 무위나 기록들이 허무맹랑하고 과대평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기록과 사실관계를 중시하는 실록에서 조차 그녀의 무위와 업적에 대한 기록을 볼 때....
[흑인에 대한 단제국 실록 기록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