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를 '좋은 시' 로 고쳐보자.소설, 영화, 수필과 같은 문학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보편성을 무시할지라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감정의 이입이 가능하게 합니다. 실제로는 보편성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묘사랄까, 그런 힘이 있다면 읽는 독자가 충분히 그것에 납득하고 그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며, 그 주제의식을 느낄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톨킨이나 아이작 아시모프도 받아들여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시는 조금 다릅니다.
축약된 문장과 그 운율 속에서 그 주제의식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보편적 기반하에 위치시켜야죠.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만, 그런 부분에서 한계가 보입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화자의 의지랄까.. 시인의 외침은 절절히 느껴집니다만, 사실 그 시대와 상황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공염불이 되니까요. 하늘빛마야님은
음미하며 읽기라는 글에서 "이해를 위한 노력은 한편으로는 작품을 음미하는 과정"이라고 했지만, 모든 시를 읽는 사람이(혹은 어떤 문학이나 작품을 읽는 사람이) 그런 이해를 할 수는 없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문학 작품이 특정한 시대와 사상에서만 갖혀서는 안 된다고 보고, 그렇기 때문에 보편성을 기반으로 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반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보편성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도, 나라를 잃은 사람도 설혹 민주주의 시대를 잃은 사람도 그 작품을 보고 자신을 이입시켜 감동을 받을 수 있죠.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이 시위하고는 아무런 상관없이 만들었음에도 대중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자체의 평가는 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것은 역시나 당연하달까요?
이런 것과 별도로 저 개인적으로는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사회와 유리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시나 문학이 그 한계를 지니더라도 저에게는 김지하와 그의 작품인 타는 목마름으로가 서정주보다 훨씬 맘에 들고, 사회와 괴리된 듯한 순수문학을 싫어합니다만....
물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런 생각이 기불이님과 다를 수 있고, 문학의 평가 방법이 과학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니, 진리를 표방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기불이님은 적어도 하면 안 되는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상관없습니다만, 어째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저렇게 만드셨는지요? 절 비꼬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만 한 예술가의 작품을 저렇게 난도질 하는 것이 옳은 건가요? 그것이 어떤 작품이던간에 그 작품 안에는 작가가 고심하고 노력한 혼이 서려 있습니다. 더군다나 김지하 시인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 시대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저 작품을 용기 있게 썼습니다.
오적과 같은 작품을 쓰고 죽을 뻔 하시기도 하셨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저렇게 만드는 것은 과연 옳은 일입니까?
작품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화가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제가 가진 그리고 제가 배우고 납득한 작품의 평가 기준과 방법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것을 비꼬기 위해서 작품을 모독하진 마시길 빕니다.